
코로나19의 기세가 꺾일 줄을 모른다. 우리나라는 다행히 수그러들고 있지만, 해외 각국에서는 파죽지세로 감염일로에 있다.
150만 명 이상이 감염되고 사망자도 10만 명에 육박한다. 일상이 바뀌었다. ‘뉴노멀(New Normal)’이라고도 한다. 다니지를 않는다. 다니지 못하게 한다. 계절의 여왕 5월인데, 이 아름다운 계절을 즐기지 못하다니, 이런 불행이 또 있을까~!
눈치 보며 동네를 산책하다 울타리를 장식한 장미꽃을 보노라니, 유럽의 포도밭이 떠올랐다. 포도밭 줄줄이 그 끝에는 장미를 심어 화사하게 핀 빨간 장미가 녹색의 포도 나무 밭에 포인트를 준다. 답답한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마음만이라도 벗어나보자~!
그래서 이 달에는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루아르(Loire) 지방으로 장미 포도밭 여행을 꾸며 봤다.

‘프랑스의 정원’, 루아르 와인산지~!
프랑스의 여러 지방 중에서 수도 파리와 근접하며 다채로운 중세의 이야기와 아름다운 성들이 많이 있는 곳이 루아르 지방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긴 강인 루아르(Loire) 강은 중앙산악지대(Macif Central)에서 발원해 파리를 향해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오를레앙(Orlean)시를 관통하며 방향을 서쪽으로 꺾어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간다. 프랑스 중세의 왕조인 발루아(Valois) 왕조 때, 골치 아픈 시민들이 있는 파리보다는 아름다운 강변과 사냥터가 많은 루아르 강가를 선호했던 왕과 귀족들이 앞 다퉈 멋들어진 성을 건설해 지금도 수십 개의 르네상스 양식을 보이는 성들이 많다. 루아르 지방 와인 협회에서 정한 표준 병에는 이러한 스토리를 담은 루아르 와인의 로고가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다. 프랑스 왕조의 상징인 백합과 왕관 그리고 사슴의 뿔이 월계수처럼 아래를 감싸고 있는 디자인이다.
와인 산지로서의 루아르는 모두 4개 내부산지로 나뉜다. 대서양 바닷가 쪽의 뻬이 낭테(Pay Nantais) 지구에서는 청포도 뮈스카데(Muscadet)로 만든 가벼운 화이트 와인이 생산돼 이 지역 바다 음식들과 잘 어울린다. 두 번째 앙주-소뮈르(Anjou-Saumur) 지구는 슈냉 블랑(Chenin Blanc) 화이트 와인과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레드 와인, 그리고 청량한 스파클링 와인이 생산된다. 세 번째 뚜렌느(Touraine) 지구에서는 감미롭고 섬세한 화이트 와인과 강한 레드 와인이 생산된다. 네 번째 쌍트르(Centre) 지구는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품종으로 만든 기품 있는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하다. 루아르 지방 와인은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 모두 무겁지 않고 신선하며, 향기롭고, 우아하고, 세련됐다. 이곳의 스파클링 와인은 더없이 상쾌하다. 이것이 바로 필자가 5월의 와인으로 루아르 와인을 선정한 이유다.

루아르 앙주 와인의 선구자, 보마르 양조장
도멘느 데 보마르(Domaine des Beaumard) 양조장은 프랑스 루아르 지방의 두 번째 지구인 앙주 지역의 중심부에 있는 명문 양조장이다. 1634년부터 보마르 가문은 외가로부터 유래한 포도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호슈포르-쉬르-루아르(Rochefort sur Loire) 동네의 멋진 언덕에 있는 밭에서는 필록세라 사태를 잘 넘기고 계속 밭을 유지해 포도 농사를 지어왔다. 지금과 같은 명성을 이뤄낸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50년대 중반에 장 보마르(Jean Beaumard)가 포도밭을 복구하면서 부터다. 디종과 보르도에서 양조학을 순차적으로 이수해 양조학 학위를 받은 장은 1955년부터 농장을 본격적으로 경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무엇보다 루아르 앙주 지역의 테루아에 큰 관심을 보이며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그는 당시의 관행이었던 보르도와 부르고뉴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전통 방식 양조법을 그대로 루아르 지방에 적용하는 것에 의문을 가지게 됐다. 포도 재배법은 지역의 특수한 테루아를 반영해야 한다고 믿었던 그는, 같은 서늘한 기후 지역인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와인 산지를 여행하며 포도 재배 방식을 연구했다. 포도밭의 식재 밀도를 높여 열기를 공유하며, 옆 포도나무와의 경쟁을 통해 뿌리를 깊게 내리게 해 포도의 품질을 향상시켰다.
한편 장은 품질 연구와는 별개로, 농장의 외연 확대에도 노력을 했다. 1957년에는 꺄르드숌므(Quarts de Chaume) 지역에 5ha의 포도밭을 구입했고, 1968년에는 사베니에르(Savennières) 지역의 15ha 밭을 구매했다. 이로써 보마르 농장은 루아르 강의 양편 모두에 포도밭을 가지게 됐고, 그만큼 와인 구성이 다채로워졌다. 한편, 장은 지역의 선각자로서 대외 활동도 매우 활발하게 했다. 1955년부터 1970년까지 ‘앙제 농대(Ecole Supérieure d’Agriculture et de Viticulture d’Angers)’에서 겸임교수로 후학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다. 1971년부터 1976년까지는 ‘앙주와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1974년에는 ‘루아르 와인협회 총연맹’ 회장을 맡기도 했다. 1992년 아들 플로랑에게 양조장 경영을 물려주고, 서서히 은퇴해 앙제 실버 대학에서 와인 양조를 강의했다.


그는 부친이 이룩한 테루아 철학의 기반위에서 기술적인 진보를 통해 보마르 와인의 품질을 한 단계 상승시켰다. 양조할 때, 저온에서 포도송이를 압착하는 방식으로 포도의 향을 최대한 보존해 섬세한 와인을 만들었다. 특히 그의 업적은 와인 병 마감재로 전통적인 코르크가 아닌 스크류 캡을 사용한 것이다. 이는 루아르 생산자 중에서는 처음이라 한다. 필자도 그의 와인을 받아 들고 깜짝 놀랐다. 물론 현재는 저렴한 와인 중에서 스크류 캡 와인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고급 와인 중에서는 거의 없다. 때문에 이러한 그의 선구자적 업적은 높이 평가 받고 있다. 게다가 그가 사용한 스크류 캡은 풀림방지가 돼 있는 고급형이어서 단가도 꽤 높으리라 추정된다. 어떻게 그는 전통적인 코르크를 버리고 스크류캡을 사용하게 됐을까? “제가 부친으로부터 양조장을 이어받고,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아버지가 만든 와인을 하나하나 시음해 봤어요. 그런데 코르크로 병입한 와인들이 병마다 각각 품질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라고 플로랑은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플로랑은 자신이 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2003년, 2004년 빈티지부터 혁신적인 스크류 캡으로의 전환 실험을 하게 됐다. “스크류캡은 가장 중성적인 재질로서 와인이 산화되는 것을 방지하고 각각의 병마다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시켜주며, 와인에 신선미를 유지시켜 줍니다.”라고 그는 변호한다. 필자 역시 개인적으로 스크류 캡을 선호하는 편이다. 나무껍질 성분인 코르크는 처음부터 오염될 확률도 있고, 시간이 흐르면서 훼손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에 비해 스크류 캡은 중성이라 와인을 오염시킬 일이 없으며, 높은 밀봉 효과로 오랜 기간 와인을 지켜줄 수 있다. 장기 숙성에도 전혀 지장이 없다. 또한 플로랑의 모든 와인은 오크통을 사용하지 않는다. 플로랑에 따르면, 오크통에서 만든 와인은 조화롭게 되는 데 적어도 10여 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손진호 / 중앙대학교 와인강좌 교수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역사학 박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와인의 매력에 빠져, 와인의 길에 들어섰다. 1999년 이후 중앙대학교에서 와인 소믈리에 과정을 개설하고, 이후 17년간 한국와인교육의 기초를 다져왔다. 현재 <손진호와인연구소>를 설립, 와인교육 콘텐츠를 생산하며, 여러 대학과 교육 기관에 출강하고 있다. 인류의 문화 유산이라는 인문학적 코드로 와인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그의 강의는 평판이 높으며, 와인 출판물 저자로서, 칼럼니스트, 컨설턴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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