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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의 역사 - 베버리지뉴스 - Beverage News - CULTURE - 술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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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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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燒酒)는 기원전 3000년경 서아시아의 수메르 지방에서 처음 제조되었다 한다. 바로 수메르인들이 증류주를 처음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 술이 지중해 쪽으로 뻗어나가 이집트를 거쳐 맥주와 와인과 같은 술 문화를 이룩했고, 다시 십자군 전쟁을 통하여 알프스 산맥을 넘어서는 위스키와 브랜디를 빚게 되었다. 그러나 동쪽으로 전파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흘러야만 했다. 중국에서 증류주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원나라 때에 이르러서이고, 우리나라로 건너온 것은 고려 말이나 되어서이니 소주가 동방으로 오기까지는 무려 4000년이 걸린 셈이다. 그 이유는 종교적으로 술을 마실 수 없는 모슬렘들이 동방으로의 무역 통로였던 실크로드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소주가 들어온 경로는 고려 후기, 원나라로부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증류주가 먼저 개발되었던 몽골에서는 소주를 ‘아라키’라 하였으며, 1335년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가 일본 원정을 목적으로 한반도에 진출한 후 몽골이 개성과 안동, 제주도에 군사주둔지를 두었는데 이 세 곳을 통해서 소주가 일반에 전파되었다. 28.png개성 지방에서는 이 소주를  ‘아락주’라 하였으며 평북 지방에서는 산삼을 캐는 사람들의 은어로 ‘술’ 또는 ‘아랑주’라 하였다.  또, 지방에 따라 소주의 이름을 각기달리 불렀는데 강원도는  ‘깡소주’, 경북, 전남, 충북 일대 지방에서는 ‘세주’, 진주는 ‘쇠주’, 목포, 서귀포 등지에서는 ‘아랑주’, 순천, 해남 지역에서는 ‘효주’라 불리기도 했다. 소주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오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상당히 고급주로 인식되었었다. 1490년(조선 성종 21년) 사간인 조효동은 “세종 때에는 사대부집에서 소주를 사용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는데, 요즈음은 보통의 연회 때에도 일반 민가에서 소주를 만들어 음용하는 것은 극히 사치스러운 일이므로 소주 제조를 금지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진언한 사실이 있다. 그 당시 소주는 사치스러운 술로 권력가와 부유층이 즐기던 술이었으며, 일반 서민들은 어쩌다 약용(혈액순환 촉진, 소화촉진, 원기보강 등)으로 쓰는 게 고작이어서 ‘약소주’라고도 불렀다. 급기야는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소주를 애용하는 인구가 늘어 식량의 소비가 늘고 독한 소주를 과음하는 데 따른 폐해가 늘어 금주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조선조 말 소주는 서민들의 술로 자리를 잡는다.  당시 소주는 지금의 공덕동 자리에서 주로 만들어졌는데, 다량으로 생산되어 값이 저렴했다.  그 덕에 마시면 배가 부른 막걸리를 마시던 서민들도 소주를 즐기게 되었다. 1960년대 식량난이 닥치자 양곡관리법을 제정하여 쌀을 원료로 한 비싼 술은 아예 개발하지도 못하도록 막았다. 그 결과 지금의 25% 짜리 희석식 소주는 30년이 넘도록 같은 맛을 유지하고 있고, 애주가들의 입맛도 그 균일한 맛에 길들여졌다. 원료는 주정으로 값싼 타피오카와 잘라 말린 고구마를 썼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카린을 첨가물로 사용했다. 요즘 들어서는 국민의 술 소주도 술꾼들의 취향이 고급화하면서 변신하고 있다. 이른바 프리미엄 소주의 등장과 소비자의 각양각색의 기호에 맞춘 여러 종류의 다양한 소주의 생산이 그것이다. 소주의 소는 세 번 고아 내린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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